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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관심

서종 나인블록 9 BLOCK

by insight5593 2025. 4. 28.

 

바람이 투명하게 흔들리던 오후, 오래된 컨테이너 간판 속 녹슨 철판 위로 ‘9 BLOCK’이라는 흰 글자가 반짝였다. ‘Time Machine Art Space’라는 문구처럼, 그 순간 나는 잠시 시간을 되감는 기분이 들었다. 가느다란 자작나무들이 길게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자, 은빛 잎새 사이로 햇살이 쏟아지고, 발끝에서는 나무 껍질 향이 은은히 스며들었다. 길 끝에 숨어 있던 붉은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고, 빨간 모자를 눌러쓴 여행자 한 사람이 셔터를 누르며 풍경을 포개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노란 구체 전구들이 낮게 매달려 부드러운 금빛을 드리웠다. 진한 커피 향과 함께 구수한 빵 냄새가 포근히 감싸 안고, 투명한 유리 진열장 속에서는 버터의 윤기가 방금 구운 크루아상 위에서 반짝였다. ‘PREMIUM HAND DRIP’라고 적힌 메뉴판 옆에서 직원은 온화한 미소로 주문을 받아 주었다. 창가에 놓인 잼·꿀·원두 패키지들은 작은 정원처럼 아기자기했고, 햇빛이 들창에 부딪혀 반사될 때마다 반짝이는 불씨처럼 테이블 위를 물들였다.

 

 

 

2층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샹들리에가 천장 철골 사이에 우아하게 매달려 있었다. 수십 개의 크리스털이 햇빛을 받아 춤추듯 반사되고, 푸른 잎사귀를 품은 실내 화분들이 반투명의 그림자를 바닥에 드리웠다. 벽돌 벽 한쪽에는 ‘This is our happy place’라는 작은 간판이 걸려 있는데, 그 문구가 이 공간을 향한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나무 결이 살아 있는 테이블 앞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녹음이 살짝 번져 물감처럼 번지는 호수빛이 시야에 담긴다.

 

 

 

손끝을 따스하게 적시는 머그잔 속 커피 한 모금, 그리고 옆에 살포시 기대어 있는 ‘9 BLOCK COFFEE’ 로고 카드. 그 조용한 조합이 묘하게 든든했다. 이곳에서의 시간은 느리게, 그러나 꽉 채워진 채 흐른다. ‘시간 여행’이란 거창한 표현 대신, 오늘의 나에게는 그저 “조금 더 나를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 준 달콤한 휴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