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Foxconn Technology Group(홍하이그룹)의 전략적 무브가 꽤 눈에 띕니다. 스마트폰 조립의 대명사였던 이 회사가 이제는 ‘자동차’라는 헤비 리프트(heavy‑lift) 분야 대신 ‘算力(컴퓨팅 파워) 인프라 서비스’로 축을 옮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업종을 완전히 바꾸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반 역량을 중심으로 미래 산업을 잡겠다”는 단단한 의지가 숨어 있습니다.
홍하이그룹 대표인 劉揚偉가 “현재 AI가 투자의 주요 방향이다”라고 밝힌 것은 단순한 선언이 아닙니다. 이번에 발표된 미국의 OpenAI와의 AI 하드웨어 설계 · 제조 협업, 그리고 NVIDIA와의 GPU 클러스터 구축 계획은 이러한 방향성을 구체화시키는 신호탄이 됐습니다. 이 가운데 자동차 사업에서 한 발짝 물러나는 듯한 모습이 더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자동차 쪽 사업에서는 ‘완성차 제조’까지는 바라기 힘들다는 것이 홍하이 내부 판단인 듯 합니다. 과거에는 전기차 수요 폭발을 기대하며 ‘모듈화 플랫폼’, ‘공급망 효율화’ 같은 키워드로 돌진했지만, 실제로는 고객사 확보의 불안정성과 수익성, 그리고 산업 생태계의 복잡성에 발목이 잡혔습니다. 특히 많은 수의 신흥 전기차 업체들이 치열한 가격 경쟁과 낮은 마진 구조에 놓이면서 산업 전체가 재편되는 시점에 들어섰다는 게 주요한 배경입니다.
그에 반해 AI 인프라 사업은 상대적으로 경쟁 환경이 명확하고 성장 곡선이 예측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대형 언어모델, 클라우드 AI 서비스, 데이터센터 수요 등에서 폭발적인 ‘算力’ 수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이미 여러 기업과 정부기관이 확인한 사실입니다. 이 흐름 속에서 홍하이는 “모바일 부문에 지나치게 의존해왔던 구조를 바꾸겠다”는 선언을 여러 차례 해왔고, 지금이 그 전환점을 찍을 적기라고 판단한 듯합니다.
삼성, 구글, 아마존 등 글로벌 기술기업들이 AI용 GPU 서버, 데이터센터, 엣지컴퓨팅 등에 대거 투자하는 가운데, 홍하이도 대만 타이페이에 약 14억 달러 규모의 AI 슈퍼컴퓨팅센터 건설을 발표했습니다. 이 시설에는 NVIDIA의 차세대 ‘Blackwell’ 아키텍처 GPU가 도입될 예정이며, 매주 약 1 000개 기계 랙을 조립할 수 있는 생산 기반도 확보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단순한 ‘부품 조립’ 수준이 아니라, AI 모델 학습과 추론까지 고려한 토털 인프라 공급자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한편, 자동차 라인에서도 완전히 손을 떼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 행사에서 순수전기차 모델 ‘Model A’를 비롯해 기존 모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공개하기도 했고, 제조·공급망 현지화를 강조하며 미국, 일본, 동남아 등지에서의 생산·공급망 전략을 병렬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다만 본질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자동차 사업은 수직 통합된 가치사슬 전체를 책임지는 대신, 더 전문화된 인프라 역량을 활용해 B2B(기업간) 시장에서 역할을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자동차 산업이 현재 겪고 있는 구조적 변화가 이 결정의 중요한 배경이라 하겠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그랬듯이, 전기차 시장도 이제 ‘치킨 게임’에서 ‘효율 게임’으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기업 수가 지나치게 많고, 경쟁이 과열되면서 많은 업체가 수익성 붕괴 위기에 처해 있고, 정부 보조금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차 브랜드가 “그냥 제조는 외주 맡기고 우리는 브랜드·소프트웨어·생태계에 집중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내는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홍하이 내부에서 공개된 분석도 비슷합니다. 자동차 시장에서 모듈화, 플랫폼화 등이 진전됐지만, 여전히 전장·소프트웨어·안전·브랜드 등에서 각 차 제조사가 확보하고자 하는 영역이 넓습니다. 일반 스마트폰처럼 부품만 바꿔 끼워서 끝나는 구조가 아니란 말입니다. 수명이 길고 안전 책임이 크며,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바도 다르다보니 제3자 위탁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엔 제약이 많습니다. 이 점을 깊이 인지한 홍하이가 ‘제조+공급망’보다는 ‘파워 인프라 공급’에 집중하기로 한 건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입니다.
또 흥미로운 것은, 홍하이가 이러한 전략 전환을 단기간의 유행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동차 시장의 재편은 단순히 업체가 없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시장 구조가 바뀌는 ‘재구성(re‑composition)’ 단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2000년대 중반 브랜드 통폐합과 제조외주화로 넘어갔듯, 전기차 시장도 수년간의 난전 후 ‘탑(Top) 브랜드 + 전문 대행 제조’의 구조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죠. 홍하이는 그때가 바로 자신이 활약할 무대라고 판단하는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향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무엇일까요. 첫째로 ‘算力 인프라의 현지화’입니다. 홍하이가 미국, 일본, 동남아에서 제조 · 공급망을 현지화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단순히 시간 · 비용 절감이 아니라, 데이터 주권과 지역적 수요를 고려한 전략입니다. AI 데이터센터나 클라우드 인프라가 국가마다 다른 규제와 인프라 조건을 갖고 있다는 점을 기업이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로 ‘제조 자동화의 고도화’입니다. 홍하이는 현재 생산 라인의 대부분이 1차 자동화 수준이라고 보고 나머지 10‑20% 미만의 복잡한 작업을 로봇·인간형 기계에게 넘기려는 의지를 피력했습니다. 즉, 이제는 단순 반복작업을 넘어서서 ‘인지 · 판단’이 필요한 영역까지 자동화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자동차 산업 내에서도 ‘算力 경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입니다. 차량 자체는 전기화가 끝이 아니고, 그다음은 ‘AI 차량’이기 때문입니다. 즉 차 안의 센서 · 칩 ·통신 ·클라우드가 결합되면서 자동차는 이동수단에서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고, 이로 인해 회사들은 더 이상 ‘배터리와 모터’만 보지 않고 ‘컴퓨팅 파워와 데이터 처리’의 측면도 같이 고민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홍하이가 ‘차 + 算力 + 클라우드’라는 릴레이에서 제조 인프라 역할을 갖겠다는 건 꽤 전략적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홍하이그룹의 이번 발표는 “제조기업이 어떻게 기술전환 시대에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안처럼 보입니다. 과거 휴대폰 조립의 성공 경험을 기반으로, 제조역량 + 공급망 최적화라는 강점을 ‘算力 인프라’라는 새로운 무대로 전환한 것이지요. 물론 리스크가 없는 선택은 아닙니다. AI 하드웨어 시장도 경쟁이 치열하고 기술 변화 속도가 빠르며 수요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스마트폰 시대가 끝물로 접어든 지금, ‘그다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제조기업으로는 머지않아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건 분명해 보입니다.
회사원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런 흐름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한 분야에서 잘한다는 것이 영원히 통용되는 건 아니라는 점, 변화하는 산업 생태계에서 자기 역량을 어떻게 전환하고 확장할 것인가는 결국 기업뿐 아니라 구성원 개인에게도 중요한 과제라는 것 말입니다. 기술이 바뀌든 시장이 바뀌든, 기반이 되는 ‘인프라 역량’이나 ‘플랫폼 수준의 사고’가 있다면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홍하이의 전략 전환이 상기시켜 줍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전략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느냐일 겁니다. 제조라인에서 GPU 서버로 전환하는 건 말처럼 간단하지 않고, 자동차 제조에서 인프라 공급자로 역할을 재정의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이 그 시기다”라고 판단한 결단 자체가 이미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홍하이가 발표할 실적과 사업 성과,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낼 생태계 변화를 지켜보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입니다. 이제 ‘칩이 아닌 차’가 아닌 ‘차 + 칩이 있는 차’가 아니라 ‘칩이 중심이 되는 차’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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